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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아빠의 추천

[한글판] 소프트뱅크 손정의사장 LIVE2011 연설 (1/7)


링크 : http://yckim.wordpress.com/2010/04/09/%ec%86%8c%ed%94%84%ed%8a%b8%eb%b1%85%ed%81%ac-%ec%86%90%ec%a0%95%ec%9d%98%ec%82%ac%ec%9e%a5-live2011-%ec%97%b0%ec%84%a4-%ed%95%9c%ea%b8%80%ed%8c%90-17/

 

 

강연 동영상에 한글 자막을 추가하였습니다.
동영상을 통해 보다 가슴에 와닿는 감동을 느끼시길 바랍니다!

본 글은 양이 방대한 관계로, 한글 번역을 7편으로 나누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본 편의 번역은 @MaxandMax, 김준오 님께서 함께 해주셨습니다. 감사 드립니다.

보시는 중에 번역본에 대한 지적이나, 번역상 문제로 이해가 어려우신 분들은 주저마시고 @newumare 로 연락주시거나, Comment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 읽으시기 전 주의사항 **

본 번역을 하는 중에, 제일 고민스러웠던 부분은 손정의 사장이 가장 강조하는
志 [こころざし]‘에 대한 해석이었습니다. 번역을 빨리 하기 위해 본 번역에서는,
뜻’ 이라고 번역을 하였습니다만, ‘의지, 포부, 꿈, 목표‘ 등의 의미도 함축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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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29일,소프트뱅크의 내년졸업자 채용학생을 대상으로한 강연회「손정의 LIVE 2011」가 있었고, Ustream에서도 생중계되었습니다. Twitter에서도 많은 트윗이 있었으며, 트래픽이 굉장했습니다. 최대로 5000명 이상의 사람이 Ustream을 라이브로 봤다고 합니다.

[일본을 다시 한번, 개혁하고자 하옵니다. 사카모토료마]
사카모토 료마.현재의 일본이 나아가야 할 광활한 여정을 개척한 남자
전혀 새로운 가치관으로 바라본 다음 시대에 대한 비전
눈 앞의 사실을 정면으로 받아들이고, 지금까지 없었던 길로 누구보다 먼저 한 걸음 내딛음으로써 그의 여정이 시작된다.
그런 료마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하여 결집한 한 무리:해원대
그들이 가지고 있던 것은 당시 가장 진보된 과학기술, 학문 그리고 커다란 의지(뜻)
해원대는 무력이 아니라,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무기로 세상을 움직이려고 하는 이들이었다.
시대를 앞서 보는 눈, 확고한 뜻, 그리고 정보라고 하는 무기로 쟁취한 새시대의 여명!

지금까지는 없었던 발상, 새로운 가치관으로,
현재 일본의 21세기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소프트뱅크는 지금 여기에 새로운 해원대기(旗)를 게양합니다
시대를 초월해 해원대기에 깃든 열정을 이어나가기 위하여…

여러분, 소프트뱅크의 손정의입니다.
오늘 바쁘신 중에도 이렇게 많이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방금 오프닝 비디오를 보셨습니다. .
올해는 확실히, 드라마에서 [료마전]  도 하고 있고, 료마붐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상황입니다.
이 비디오는, 지금으로부터 4-5년전에 만든 것으로, 소프트뱅크의 로고 마크죠, 여러분의 휴대폰 등 곳곳에 equal(=)이라는 로고가 붙여져 있습니다만, 이는 바로 이 료마의 해원대의 2개의 선, 깃발의 마크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그 만큼 제가 사카모토료마를 동경한다는, 그러한 연유에서 정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 일본은 에도막부 말기의 상황과 유사하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과거 20년간, 일본의 GDP는 성장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정치문제 혹은 경제 문제와 더불어, 나라 전체가 활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럴 때야 말로 일본을 다시 한번 거듭나게 함으로써, 일본의 새 시대를 새롭게 맞이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료마와 같은 「높은 뜻(志)」, 그러한 높은 뜻(志)에 많은 젊은이들이 결집하여 이 세상을 한번 더 활성화 시키는 것!그러한 생각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희 소프트뱅크는 적어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물론 저희 소프트뱅크뿐만이 아닙니다. 일본은 아직 뛰어난 인물, 회사, 그리고 조직, 분명히 어디에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더욱 분발하고, 또 여러분과 같이 젊은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새롭게 일어나서, 일본에 다시 한번 새 시대를 열겠다는 그러한 기개로 노력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올해 새로이 졸업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회 즉, 회사설명회라는 당초의 취지로 이와 같은 행사를 개최하고 있습니다만, Ustream을 통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생방송으로 보실 수 있도록 중계중입니다.

또 시청과 동시에, 제가 지금 말하고 있는 내용이 트위터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은 학생인 여러분만이라기 보다는, 뜻(志)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흥미가 있는 많은 분들이 동시에 보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뜻을 높이(志 高く)

오늘 제일 중요한 메인 테마는 소프트뱅크 회사소개라기 보다는, 원래 제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이 소프트뱅크 사업을 시작하였나? 어떤 것을 이루려고 생각했었나?어떠한 뜻을 가지고 있는가?그런 것들을 중심으로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소프트뱅크 회사의 사업을 하나하나 세세하게 안내하는 것보다, 가장 우리 회사의 특징을 잘 설명할 수 있을 꺼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뜻을 높이“이것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인데, 만약 사람들이 사인을 요청하거나 좌우명은?이라는 식으로 물었을 때, 반드시  이것을 얘기합니다. “높은 뜻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간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 자신이 어떤 계기로 높은 뜻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려고 하였나 하면, 한 권의 책이 있습니다.

15 세 때 읽은 ” 료마가 간다 “입니다

이 시바료타로가 쓴 ” 료마가 간다
이 책을 읽고, 충격을 받았지요. 그때까지는 어땠냐 하면, 그냥 밝은 중학생,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습니다.
축구나 야구나, 검도같은 그런 스포츠를 하든가, 친구와 함께 저녁까지 뛰어다니며 놀고하는 생활을 해왔었습니다.

가끔 책을 읽는다고 하는게, 헤르만 헤세의 ” 수레 바퀴 아래서 “라는 좀 어두운 책이였는데, 그 때 그런 책을 읽는 것보다 더 사나이다운 책을 읽으면 어떠냐하고 가정교사 선생한테서 한소리 듣고 읽은 것이 ” 료마가 간다 “였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할까요… 1 번 밖에 없는 인생.

이 중에, NHK의 ” 료마전 “을 보고 있는 분들 좀 손을 들어볼래요?

오오, 굉장하네요.80 % 정도 되네요.

여기에 와있는 여러분의 료마전을 보는 시청률은 80 % 이상이라는 것은 일반 사람들이 보는 것보다 훨씬 높은데,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료마전을 보고 있으면 … 어제도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고 말았습니다.

낭인이 되어 버리면, 가족에게 폐를 끼칠지도 모른다.
그래도 누이는 “료마!갔다 와라! !너는 토사(역자 주: 지역이름)에 파묻혀서 지낼 남자가 아니야, 보다 더 큰 일을 하거라. 그런 것 때문이라면 우리들은 상관 없다.다녀오거라!

그렇게 해서 내보냈지요. 그 장면에서 눈물이 뚝뚝 흘리고 말았습니다.
낭인이 되는(역자 주-脱藩, 일본사의 에도막부 말기시대의 대표적인 현상으로,  무사가 藩-지방 호족, 영주의 지배 영역-을 탈출하거나 벗어나 낭인이 되는 것을 말함)그 장면에서 내가 엉엉하고 운 것은 제 자신의 삶과  겹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내가 16 세의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간 셈인데, 그 때  아버지가 피를 토해 병원에 입원하고 있었고, 그래서 가족도 걱정되고, 집안이 어떻게 될까, 집이 어떻게 될까도 포함하여 가장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그 때 나 혼자 미국에 가려고 했던 것인데, 그 때 엄청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친척들도 아버지가 병에 쓰러져 입원하고 있는 때, 어째서 너 혼자 미국에 간다고 할 수가 있느냐! 차가운 녀석이라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담임 선생님도 교장 선생님도 반 친구들도, 아직 고등학교 1학년 1 학기에, 뭐 때문에 그런 상황에서 퇴학하고 미국에 가려고 하냐고 했습니다만, 나는 결심하고 미국에 간 것이지요.

나한테 있어서 낭인이 된 것은, 병드신 아버지를 두고 미국에서 가버렸던 것이지요.

나는 그 때 울면서 매달리는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병원 의사 선생님에게 물어 보니, 아버지는 죽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피를 토하기는 했지만 죽지는 않는다고.
앞으로 몇 년간의 집안을 생각하면, 집에 있으면서, 학교에서 공부하고, 가족을 위해, 그것은 그것대로 중요한 것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앞으로 몇 십년을 생각하면, 가족을 위해서도, 그리고 가족을 넘어서, 저 자신이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 인생을 바치고 싶습니다. 그래서 나는 다녀오겠습니다! “

그리고 눈물을 뿌리치고 갔습니다.

나에게 있어서의 뜻(志).
그 책을 읽고 조금 움이 텄습니다.
뜻(志)이라는게 대체 뭐야?
그 때는 무엇을 이루고 싶은가, 라는 것까지는 명확하게 보이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무언가 커다란 일을하고, 어떤 수많은 사람들을 돕고 싶다, 자신의 또는 자신의 가족과 같은 그런 사리사욕이 아니라 더 커다란 인생을 불태우고 싶다, 몸이 가루가 될 때까지 열심히 노력해보고 싶다. 그것을 이루고 싶다! !
그 마음만은 강렬해졌던 것입니다.

그것이 나에게 있어서의 뜻(志).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는, 뭔가 커다란 일을 이루고 싶다

많은 사람, 백만의 사람들을 돕고 싶다.
백만 천만의 사람들을 돕고 싶어. 그런 사람들에게 공헌하고 싶다.
무언가 커다란 일을 하고, 그것을 이루고 싶다.

돈욕심 같은 거는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뭔가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그 녀석이 있어서 다행이다라고 생각이 들만한 것을 하고 싶어서, 결심을 한 것입니다.

나에게는 인생의 5개의 큰승부처가 있었습니다.

인생의 첫 번째 승부,
그것은 “1.뜻(志)을 세우고, 도미(미국으로 감)” 입니다.

15살 때, 1 개월간 여름 방학에 미국에 영어연수를 갔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었지요.
정말로 미국은 넓고,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 가장 문명이 발달하여, 힘이 있고, 빛을 발하고 있는 미국.

료마가 “외국에 가보고 싶다. 미국에 가보고 싶다, 유럽을 보고 싶다”, 하지만 갈 수 없다!
요시다 松陰 선생이 “자~ 미국에 가자!. 외국에 가는 거야!” 라고 하며, 배로 밀항하려다 들켜서, 할복할 수 밖에 없었지요.

그토록 목숨을 걸고 보고 싶다! !라고 하는 사람들이 갈 수 없었던 외국을, 나는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기회가 있다면, 보고 싶다라고 생각만 했었는데, 실제로 보고서는 깜짝 놀랐다!
이것은 일본과는 비교가되지 않을 정도로, 뭔가 엄청난 것을 느껴져서 가만 있을 수가 없었어요.

낭인이 되어서!

라고 생각하고, 탁!하고 퇴학 신청을 내고, 고등학교 1 학년 1 학기만하고 퇴학했어요.

교장 선생님도 담임 선생님도, 그렇게 가고 싶으면 휴학을 하면 어때,
정 그렇게 미국에 가고 싶으면 대학에 가고 나서라도 괜찮지 않아,
대학 졸업하고 나서라도 괜찮치 않아,
그렇게 가고 싶으면 , 지금 당장 어떻게든 가고 싶으면, 휴학을 하면 어때?
1,2 년 가서 상황을 보고 되돌아 오든지, 그러면 어때하고,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나는 교장 선생님에게,
“선생님!저는 약한 남자입니다.
미국에 가도 영어도 잘 몰라요.
혼자 가서 어떻게 생활해야 할 지도 몰라요.
곤란한 상황이 닥치면 좌절해 버려서, 마음이 약해져서,
돌아올 옛 보금자리가 있으면 거기에 돌아올지도 몰라요.
그러면, 마음이 흔들리게 됩니다.
퇴로를 끊어버리지 않으면. 퇴로를 끊어버리지 않으면, 고난과 맞설 수가 없어요.
그래서 휴학이 아니라 퇴학시켜주세요!

나는 이 고등학교가 아주 멋지다고 생각하고,
선생님에게도 학생들에게도 아무런 불만이 없어요.
불만이 있어서 자퇴하는 게 아닙니다.
모두 좋은 친구들, 모두 좋은 선생님이시고,
이렇게 신경을 써서 말려 주십니다.
교장 선생님도 담임 선생님도, 저는 정말 멋진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선생님들이 싫어가는 게 아닙니다.
도전하기 위해서 가서, 좌절하고 돌아오면, 남는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퇴로를 끊는 것입니다 “
라고 미국에 갔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엄청 공부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간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 원해서 간 셈이기 때문에, 변명은 하고싶지 않았어요.
어쨌든 죽기 살기로 공부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대학생이고, 5000 명 가까운 사람이 있는데 당시의 나와 비교하여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보다 더 많이 공부한 사람은 없다.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도중에 폐렴이 걸렸었는데, 폐렴이 걸린지도 모를 정도로,
콜록콜록, 섹엑~세엑~, 머리가 띵~하고, 그런 상태에서도 전혀 쉬지 않고, 한번도 수업을 빼먹지 않고, 항상 앞줄의 맨가운데에 앉아 선생을 잡아 먹을 듯이 바라보며 공부하고, 화장실에 갈 때도 절대로 교과서에서 손을 떼지 않고, 읽으면서 화장실에 갔습니다.
길을 걸을 때도 교과서를 읽고, 운전 할 때도 이어폰으로 수업 내용을 테이프로 다시 복습했습니다.
자는 시간만, 자는 시간도 최소한의 시간, 몽롱한 상태에서도, 자는 시간 이외는 모두 공부를 했습니다.

영어를 모른다, 그런 식으로 변명을 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때까지는 일본의 고등학교에서 어쩔 수 없이 공부하고 있었어요.
마지 못해서 공부를 하니까 여러가지 변명을 대곤 했지요.
원하지 않는 것을 하고 있으니까 … 무엇을 위해 난 공부를 해야만 하는가? .
이따위가 세상에 나가 도움이 될까-!하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대강, 설렁 설렁 공부 했어요.

근데, 미국에 가서, 그야말로 피를 토하고있는 아버지를 두고, 우는 엄마를 뿌리 치고, 미국으로 간 것이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서 내가 여기에서 변명이나 대면서 공부를 게을리 하면 어떻게 되나?!
학생인 나에게 공부는 본업! 본업중의 본업에 목숨을 걸 정도로 공부를 하지 않으면, 벌을 받는다!!하고 생각 했었지요.

그래서 여기 있는 여러분보다 적어도 공부하는 절대 시간면에서는, 하루에 공부하는 시간으로는 나를 이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정도의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물리적인 한계를 넘을 정도로 나는 공부했습니다.
그만큼, 불태우고 불태우고 끊임없이 불태우며 공부했습니다.
퇴로를 끊고 미국에 간 이상, 나에게는 인생의 큰승부 전환점이었던 셈이었습니다.